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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20년만에 3억 빚 다갚은 이야기

 


-선결론: 이십년전에 생긴 빛 3억 다 갚았다.










0. 서설

안녕 게이들아? 나이 마흔 다 되어가는 고추 안 서는 아재야. 읽을거리 판에 올리려고 했는데 다 써놓고 공지보니 썰은 올리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여기다가 다시 써볼게.

사실 전재산 천만원이 된 것은 며칠 전일이야. 어디다가 자랑하고 싶은데 오프라인에서는 자랑할데가 없어서, 

옛날 라면 엎을때부터 눈팅하던 개드립에다가 자랑한번 해보려고 가입했어. 여기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가입했는데 

가입하자마자 글을 못 쓰더라고 ㅎㅎㅎ. 며칠 지나서 안 쓰려다가 오늘지나면은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한번 써보려고. 







1. 풍족했던 어린시절

우리 아버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열심히 일했어. 어머니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시고, 이모를 먹여살리고 공부시키기 위해서

중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일을 시작하셨어. 아버지는 분식집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반해서 몇달간 쫓아다닌 끝에 아버지 23, 

어머니 20살에 결혼하시고 나를 낳으셨어. 우리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정말 성실히 일하시는 분이셨고,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중소기업 사장님이 되셨어.



나는 할머니랑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는데 솔직히 부족한 것 없이 자랐어.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풍요롭게 자랐던것 같아.

사고 싶은것은 다 샀고, 갖고 싶은것은 다 가졌어. 먹고 싶은게 있다고 할머니에게 말하면 그날 저녁은 그걸 먹을 수 있었어.

내 꿈은 어릴때부터 판사였어. 부모님 모두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학업을 포기하신것을 엄청 안타까워하셨고, 

나 공부하는데 지원을 아끼시지 않았어. 다행히 나는 다른것은 잘하는 것이 없었지만 공부는 잘했고, 부모님은 엄청 기뻐하셨어. 

그 시절에 몇개 없던 영어 학원에도 다닐 수 있었고, 남들 몰래 과외도 받았던 기억이 나. 

중학교 때 항상 전교 5등 안에 들었었고, 고등학교 반배치고사때 전교 1등으로 들어갈 정도로 공부 하나만은 자신있었어.







2. 사고

imf 시대가 되었어. 우리 아버지 회사도 당연히 휘청거렸지. 빚이 쌓이고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집에 잘 못 들어오셨어. 

아버지는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면 극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나봐. 집에서는 잠만 자고 거의 매일 일만하셨지. 빚이 쌓이고, 

회사가 어려워서 직원을 늘릴수가 없어서 아버지도 직접 기계에 붙어서 일을 하셔야만 했어. 그리고 불이 났어.



기계가 과열되었다는지 어땠었다는지 불이 났고. 불은 아버지 공장 뿐만 아니라 옆 공장들까지 다 태웠고, 화학약품이 많던

공장들이라서 불은 걷잡을 수 없었어. 아버지를 포함해서 여덟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다치셔서 병원으로 실려가셨어. 

아직도 밤에 엄마와 할머니와 울면서 택시잡으려고 도로를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 택시가 안 잡히더라고. 

셋이 도로에 주저 앉아서 울면서 택시오라고 손흔들었던 기억이 생생해. 



아버지는 의식이 없으셨어. 우리 가족들, 직원들 가족들 모두 울면서 응급실에서 지키고 있었어. 두 분은 많이 다치셨지만,

회복될 수 있었지만. 우리아버지를 포함해서 여섯명은 혼수상태였어. 이틀째 되던 날 한 분이 돌아가셨어.

4일째 우리 아버지는 눈을 뜨셨어. 내가 펑펑 울고 있는걸 보면서 울지마라고 했던 기억이나. 

아버지는 누구 다친 사람이 없는지 물으셨고. 미안하다고 하셨어. 그리고 그날 돌아가셨어.

여섯분 아무도 병상에서 일어나시지 않았어.

우리 가족은 펑펑 울면서 장례식을 치뤘어. 아버지 장례중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쓰러지셨어.

그리고 일주일뒤에 할머니도 돌아가셨어. 

줄초상...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는 너무 울어서 눈물도 안 나오드라. 어머니는 벽에 기대서 산 송장처럼 앉아만 계시고.

할머니 장례식까지 끝나고 어머님은 앓아 누우셔서 매일 울고만 계셨다.

나는 도시락 직접 도시락 싸서 학교 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3. 아버지가 남긴 것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차근차근 회사도 정리되고, 직원들 보상도 해주고. 불이 옮겨 붙은 공장들 물어주고. 

수습하는건 세상을 모르는 어머니 뿐이었어. 한달쯤 지나서 어머니는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울고 불려다니고 울고. 

물어줘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 공장도 팔아야 했고. 아파트도 팔았어. 아버지차도 당연히 팔았고. 

장농, 책상, 티비, 심지어 내 방에 있던 백과사전도 팔았어. 그렇게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고 남은 것, 빚 3억. 

나중에 다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나하고 죽어버리려는 생각으로 농약을 사러 약국에 간적도 있었대.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농약을 못사서 돌아왔을 지경이었어.



우리는 잘 곳이 없어서, 이모집 현관에서 약 한달정도 살았던 것 같아. 이모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거든. 

그런데도 있는 돈 다 털어서 방이 달린 작은 떡볶이 집 여는 것을 도와줬어. 

테이블 다섯개 있는 낡고 작은 떡볶이집. 거기에 딸린 방에서 우리는 살았어. 바람이 너무 많이 통했고 추웠어. 

아침에 일어나면 물에 살얼음이 낄 정도라서 새벽이 되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깰 정도였어. 

한달 내내 하루도 못 쉬고 장사해서 번 돈은 겨우 이자나 갚는 정도였고. 남는돈이 없어서, 

매일 떡볶이랑 김밥만 먹었지만, 그래도 우리 둘이 살 수 있는 집이 생겨서 안심되었어.










4. 고등학교 생활

우리 고등학교는 강제로 야간 자율 학습을 했어. 일학기는 사 놓은 책들이 있어서 공부할 수 있었는데.

이학기에는 참고서고 뭐고 책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래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교과서만 보고 있었어. 

공부도 안 되었고... 매달 모의고사를 봤는데 눈에띄게 성적이 떨어지는건 당연한 일이었어.

그래도 모의고사 반 일등으로 들어온 아이가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니 걱정이 되었는지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부르셨어. 선생님께서는 줄초상이 났다는것만 알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셨나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공부도 안하고 그러면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독이셨는데. 

눈물이 줄줄 흐르는거야. 한참을 창피한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어. 그리고 지금 우리집 상황이 어떤지. 

지금 내가 학교에 앉아 있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래도 힘내라고 말 없이 다독이셨어.



다음날 선생님이 부르셨어. 그리고 책을 과목별로 하나씩 한뭉텅이 주시더라고.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다른 선생님들한테 책 한권씩만 추천해 달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얻고,

없는 것은 직접 사셨다면서. 대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고. 고마워서 울보처럼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자식이 공부하게 책 주었는데도 울고 있다고 쥐어박으시고 공부하라고 웃으시면서 보내시더라고. 

이후로 학기마다 선생님이 책을 챙겨주셨어. 이분이 삼년간 내 담임이셨어. 우리학교는 선생이랑 학생이랑 

같이 학년이 올라가는데 나중에 이야기 하시기로 선생님이 부탁부탁 해서 계속 자기반에 넣어달라고 했다고 하시더라고.

내 은사님이야.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가면 장사 마감하는 것을 돕고 바로 잠들었어. 새벽 네시가 되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깨게 되더라고.

어머니는 장사준비를 하시고. 나는 떡볶이 먹는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를 했어.

책이 과목별로 한 권씩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책들만 반복해서 봤어. 밑줄 그으면은 책이 지저분해지니,

공책에다가 조그마한 글씨로 빽빽하게 옮겨적으면서 공부했어.

나중에 일년쯤 보게되는 책들은 안보고도 한챕터정도는 그대로 옮겨적을 수 있을정도로 책이 외워지더라고. 

그리고 다시 전교 1등까지 올라갔어. 지역 등수도 한 손가락에 들었어. 나는 선생님께 감사했고, 선생님도 많이 기뻐하셨어.







5. 대학교 입학

그렇게 3년간 공부했고, 수능도 평소보다 잘봤어. 선생님이 추천한대로 해서 S대법대와 한군데 법대에 합격했어. 

나는 고민했어. S대는 그냥 학생이었고, 다른데는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그랬거든. 우리집은 등록금은 커녕 책값도 없었거든. 

나는 아쉽지만 이것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다른데 법대로 가려고 했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니, 

교장선생님이 부르셔서 봉투를 주셨어. 그 봉투에는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있었어. 

제 사정을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말씀하셨고. 교장선생님이 등록금을, 선생님들이 돈 조금씩 걷어서 책값하라고 모아주셨대. 

눈물이 나더라고. (자꾸 우는 이야기만 쓰네. 부끄럽게). 교장선생님은 대신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서 등록금은 갚으러 오고,

나머지는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라고 하시더라고.



정말 고마운 분들 덕분에 나는 S대 법대에 들어가게 되었어. 나는 합격하자 마자 과외를 다섯개씩 했어. 

그러니까 숨통이 트이더라고. 어머니가 장사하는 돈은 빚 이자를 갚고. 과외한 돈은 생활비로 하고. 

비록 빚을 줄이는 것은 못하지만 가끔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어머니 병원도 가끔 가실수 있다는게 행복하더라고. 

그러면서도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다. 장학금을 받으면 등록금만큼 돈을 버는거니까 꼭 장학금을 받아야 했거든. 

친구들이나 선배들하고 술 먹은적이 한번도 없었어. 수업 끝나면 바로 과외, 과외 끝나면 바로 도서관이었거든.

우리때도 그렇고 원래 법대 애들은 군대를 최대한 미뤘거든. 나는 방위가 되어서 1학기 끝나자마자 바로 방위로 갔다.

6시까지는 통지서 돌리고, 저녁에는 과외하고.







6. 전과

사실 내 꿈은 한번도 변함없이 판사였고 법대를 갔기 때문에 당연히 사법시험을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대학 동기들은 이미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친구들,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과외를 하면서 사시를 하는 것은 미련한 짓거리같았고. 그러면 얼마나 돈을 모아놔야 하는지 알아야했거든. 

공부하고 있는 친구과 이미 시험에 붙은 선배들,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계속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선배들. 

모두가 하나같이 하는 말은 신림동에 들어와서 학원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림동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에 있어야만 시험에 붙을 수 있으니까. 지금은 정보가 예전보다 더 많이 돌겠지만. 

그 때 당시에는 시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무슨 책을 사야하는지. 

뭐가 시험에 나오는지 다 신림동에 있었거든. 매년 출제경향이 바뀌기 때문에 책만 읽어서는 평생 공부만 한다는 소리였다. 

90년대 후반이었는데 최소로 돈 쓰던 친구가 월 80만원이었다. 

만나본 선배중에 가장 빨리 시험에 붙은 형이 각잡고 공부한지 4년만에 합격. 아직 못 붙은 형은 9년째. 

내가 그 형보다 열심히 하고, 더 천재라서 3년만에 붙는다고 해도 대략 3천만원. 꿈과 같은 돈이었다.

지금부터 한달에 백만원을 모아도 3년은 모아야 시작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3년만에 합격못하면 아무것도 남는것 없이 3천만원을 날리고 6년의 시간을 날리는 것이었다. 

이 계산대로라면 도저히 도전할 수 없었다.



내가 줄일 수 있는 것은 학원비 뿐이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학원을 못다닌다는 말은 못하고,

학원다니는게 너무 싫으니 학교수업만으로 합격할 수 없냐고 선배들한테 물었더니 모두가 병신이라고 비웃었다. 

그래도 일단 도전해볼 수 밖에 없었다. 복학하자마자 과외도 줄이고 학교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1학년 2학기는 교양이 많아서 법학은 3개 밖에 없었지만. 3개 다 압도적으로 A+ 받았다.

그리고 바로 사법시험 기출문제를 사다가 내가 들었던 범위만큼 풀어봤다. 20%정도 맞았던것 같다. 

시험은 동쪽에서 나오고, 학교 수업은 북쪽으로 가는 느낌이랄까?

아예 반대는 아니지만 시험에 나오는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쿨하게 포기했다. 경영대로 전과했다. 어머니에게는 돈이없어서 고시준비 못한다는 이야기는 못하고, 

해보니 법학이 안 맞는것 같다. 경영학이 재밌는것 같아서 경영학과로 간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쉬워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걱정만 하셨다. 쿨하게 포기했지만 가끔 울컥울컥 했다.







7. 취업

생각보다 경영학이 더 재밌었다. 법대교수는 다들 별로 수업에 의지가 없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사시에 도움이 안되었거든. 30분 늦게 들어와서 30분 일찍 끝내주는 교수도 있었고. 

아예 책 낭송회를 하는 교수도 있었고.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 학기에 120명 듣는 수업에 출석을 안 부른다고 하니 시험보는 날 빼고 8명만 수업들었다는 이야기는 레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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